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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인터넷과 표현의 자유 - 제이크 베이커 사건
    <시민과 변호사>, 1998년 4월호
  2. 인터넷 보안 - 해커와의 전쟁
    <시민과 변호사>, 1998년 5월호
  3. 에로티시즘과 포르노 - 규제와 자율의 갈림길에서
    <시민과 변호사>, 1998년 6월호
  4. 컴퓨터와 한글 - 우리말 살리기
    <시민과 변호사>, 1998년 7월호
  5. 인터넷 카메라 - 보여주고 싶어요
    <시민과 변호사>, 1998년 8월호
  6. 컴퓨터와 2000년 문제 - 세상 끝날?
    <시민과 변호사>, 1998년 9월호
  7. 인터넷과 한글 - 영어 모르면 문맹?
    <시민과 변호사>, 1998년 10월호
  8. 인터넷형 "번지내 투입" - 전자우편과 스팸
    <시민과 변호사>, 1998년 12월호
  9. 긴급진단 - 밀레니엄 버그
    <시민과 변호사>, 1999년 1월호
  10. 인터넷 주소 투기 - 앉으면 주인?
    <시민과 변호사>, 1999년 2월호
  11. 인터넷과 전자상거래 - 무일푼으로 사는 세상
    <시민과 변호사>, 1999년 3월호
인터넷 보안
해커와의 전쟁
<시민과 변호사>, 1998년 5월호
얼마 전에 폰뱅킹 전화를 도청하여 은행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알아낸 다음 그걸로 수억 원을 빼돌리다 경찰에 덜미를 잡힌 사건이 있었는데, 범인 일당 가운데에는 내로라 하는 컴퓨터 전문가가 있었다. 그가 던진 말 한 마디는 인간이 추구하는 편의와 그에 따른 위험을 곰곰 생각하게 한다. "자동화가 되면 그만큼 더 편리하지만 그만큼 더 위험해진다." 이는 현재 인터넷에도 꼭 들어맞는 말이다.
     인터넷은 정보공유를 취지로 삼고 있지만, 인터넷에 올라 있는 서버가 정보를 전부 공개하지는 않는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기업형태가 다국적이 되고 세계적인 지점망을 갖춘 기업도 늘어나 저마다 정보망을 갖추게 되었는데, 기업의 경우에는 정보공유에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일반 소비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정보는 문제가 없지만, 기업활동을 원활히 하자면 기업의 기밀이라 할지라도 내부자들이 업무상 접근하기 쉽도록 온라인상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가지고 있는 정보를 모두 공개하기 위한 서버라도 서버에 이상이 생기면 정보제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관공서에서 시민의 요구를 "더 빠르게, 더 쉽게" 처리하자면 관공서에서 할 일이 그만큼 많아지고, 관공서가 편하자면 시민이 그만큼 골탕을 먹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올라 있는 서버가 방문객의 편의만을 보살피자면 서버를 관리하는 사람의 일이 그만큼 더 어려워지는 법이다. 이 때문에 서버와 방문객 양측의 편의를 적절히 절충하는 선에서 정보제공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중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바로 서버 보안이다.
     작년에도 [한글과 컴퓨터]사 제품 사용자들을 위한 게시판 서비스인 [한글마을]에 어린 학생이 침투하여 자료를 지우는 통에 서비스가 몇 시간 중단되는 사건이 있었다. 관리자 측에서는 이런 일을 당하고도 몇 시간이나 정황을 모르고 있었다니 놀랄 수밖에 없다.
     컴퓨터 보안망을 뚫고 들어가는 일은 해킹(hacking)이라 하고,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해커(hacker)라 한다. 해커 가운데에는 지능이 뛰어난 사람이 많고, 대부분은 장차 자기만이 접속할 수 있는 "뒷문"을 만들어 둔 채 침투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서버에 해코지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까닭은 그렇게 하면 침투한 흔적이 남거니와 추적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버를 관리하는 측에서는 해커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고, 해커는 보안이 튼튼하면 튼튼할수록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침투해 들어가고자 한다. 이처럼 해킹과 보안은 감추고 뒤지는 숨바꼭질 양상을 띠고 있다. 나아가 근래에는 기업에서 서버 보안 책임자·자문역 등으로 해킹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을 채용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취직기회를 노리고 무조건 뚫고 들어가 보자는 해커도 없지 않다.

해킹
해킹은 동사 hack의 명사형인데, 무엇에 매우 골몰하는 것을 나타낸다. 컴퓨터에서 이 동사는 원래 프로그램을 짜느라 부심하는 것을 말한다. 근래에는 해킹이라는 말이 거의 언제나 "범죄"와 연관되어 쓰이기 때문에 이 말 자체에 대한 느낌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해킹의 역사는 컴퓨터의 역사와 상통한다. 1950년대, 컴퓨터가 값이 비싸 일반인으로는 만져볼 수도 없던 시절에 MIT에서 시작한 해킹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나눔'과 '인간을 위한 과학기술'이라는 윤리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후 몇십 년이 지난 오늘날 그같은 윤리는 많이 퇴색하고 변질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기 변하지 않는 윤리관은 '관료주의·독점주의에 대한 증오, 정보의 무제한적 공유'이다.
     그러나 정보가 곧 자본인 우리 시대에 이런 윤리관은 사유재산에 대한 침해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에, 결국 정보를 지닌 측과 그 정보를 공유하자는 측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다른 모든 기술이 그렇듯이, 해킹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정보를 지닌 측에서도 "해킹"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예로 서버 보안 점검을 들 수 있다. 실력자 해커를 고용하여 서버 보안상의 취약점을 알아내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이다. 영화 [네트]The Net에서 주인공의 직업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한 때 국가 전략상 해커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도 있다. 전선도 우방도 없는 국제적인 경제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커를 활용하여 첨단기술을 확보하자는 것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만 의존하여 자체기술개발을 등한시한다면 기술은 언제나 선진국의 꽁무니만 뒤쫓는 양상이 될 것이다.

초보자는 무서운 해커?
실력파 해커라면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실력이 있기 때문에 잡히지 않는 것이겠지만, 이는 또 이들이 서버에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개 해킹으로 덜미가 잡히는 사람은 이제 막 해킹에 대해 알게 된 초보자들이다. 해킹에 필요한 각종 프로그램은 인터넷상에서 쉽사리 구할 수 있는데, 호기심 등으로 이러한 도구를 구해서 서버에 침투해 들어갔다가 실수로 또는 엉뚱한 영웅심리가 발동해서 서버에 있는 자료를 지우는 것이다.
     사실 이런 류의 해킹은 자료를 그 날 그 날 모두 사본으로 복사(백업backup)해 두기만 하면 쉽게 대처할 수 있다. 어제 들어와 모두 지웠는데 오늘 들어와 보니 고스란히 되살아나 있다면 아무리 악의적인 해커라도 진이 빠져 손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백업은 이런 부류의 해커에게는 천적인 셈이다.

더욱 무서운 실력파 해커
서버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해서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서버에 몰래 들어와 점잖게 뒷짐지고 구경만 하다가 흔적 없이 빠져나가는 해커라면 그 서버에 있는 정보는 모두 해커 자신의 컴퓨터 안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열람할 수 있을 것이다. 온동네 집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마스터 키를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것을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가 자신의 윤리관인 '정보의 무제한 공유'에 충실하여 그 정보를 공개하기라도 한다면 기업이나 국가의 존망이 걸린 기밀이라 하더라도 만천하에 공개되고 마는 것이다. 인터넷상에는 핵폭탄 제조법까지도 올라와 있는데, 대체로 이런 해킹의 결과라고 보면 될 것이다.
     또, 인터넷이나 PC 통신 등을 통해 요즘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 전자 상거래이다. 대개 전자 상거래는 암호 기법을 통해 신용카드 번호나 계좌번호, 거래내역 등을 주고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이를 누가 중간에서 가로채 쓴다면 건전한 상거래 자체를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케빈 미트닉 사건
해킹으로 온세상이 떠들썩해진 사건이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케빈 미트닉(Kevin Mitnick)이라는 미국인이다. 사진은 그가 체포된 직후 찍은 것이다.
     1970년대, 그러니까 컴퓨터가 값비싼 취미 수준을 벗어나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한 무렵 미트닉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변두리에서 사춘기 시절을 지냈다.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할 이렇다할 모험도 없이, 이혼한 중-하류층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외톨이로 지내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전화망을 손아귀에 그러쥘 수 있는 막강한 힘에 이끌리게 되었는데, 이렇게 하여 얻은 지식이 바로 프리킹(phreaking)이라는 것이었다. 프리킹은 주로 전화를 무료로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그 무렵 이미 10년이라는 역사와 그에 걸맞는 지하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한창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는 시기였으므로, 컴퓨터와 모뎀만 있으면 전화회사의 전자교환설비를 통제할 수 있었다. 미트닉은 실력이 좋아, 전화를 무료로 이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유명인사나 권력자들의 전화를 엿듣는 데에도 맛을 들였다.
     그는 이내 프리킹을 하는 다른 또래들과 어울리게 되었는데, 이들이 벌이는 일은 대개 장난질 수준이었다. 예를 들면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를 가로채 "문의하신 번호는 8750 다음에 절반(half)을 돌리시면 됩니다. 절반은 어떻게 돌리는지 아세요?" 등으로 안내한다든지, 개인 가정의 전화를 공중전화인 것으로 조작하여 가정집에서 수화기를 들면 20센트 동전을 투입하라는 안내가 나오게 하는 것 등이었다.
     그러다가 이들은 좀 더 심각한 일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1981년, 당시 그의 나이 17세, 미트닉과 다른 두 명은 어느날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퍼시픽 벨]사의 COSMOS 컴퓨터실로 들어갔다. 이 컴퓨터는 미국 전역에서 여러 전화회사가 전화설비의 기본 기록 목적으로 이용하는 데이터베이스였는데, 여기서 이들은 컴퓨터 암호와 매뉴얼 등을 훔쳐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탁상용 전화번호첩에 전화번호를 남겨두고 나왔다. 이름은 물론 가명이었고 전화번호도 가짜였지만, 이 번호로 걸면 어느 카페 공중전화 벨이 울리게 해 두었다.
     완전범죄는 아니었다. [퍼시픽 벨]사의 직원이 번호첩에 적힌 이 번호가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다. 사건이 해결된 것은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의 애인이 경찰에 찾아감으로써였다. 미트닉과 친구들은 체포되었고, 이들은 전산망을 통해 자료를 파괴한 것과 컴퓨터 매뉴얼을 훔친 죄로 기소되었다. 그는 이 때 비교적 운이 좋아 3개월간 소년원에 수용된 뒤 1년간 보호감호 처분을 받는 것으로 끝났다.
     그 뒤 1980년대를 그는 경찰과의 숨바꼭질로 보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또 점점 더 널리 알려지는 자신의 악명에 도취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콘도르의 3일]Three Days of the Condor이라는 영화를 보고 자신의 별명을 '콘도르'로 정한다. 주인공이 CIA의 추적을 받는 영화 내용과 마찬가지로, 경찰로부터 쫓기는 자신을 상징한 것 같다.
     1983년, 그는 남부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전산실에서 단말기 앞에 앉아 있다가 체포되었다. 미국 국방부의 전산망인 ARPAnet에 불법으로 침입하다가 붙들린 것이다. 6개월을 언도받고 소년원에 수감되었다. 석방된 뒤 그는 자신의 자동차에 "X HACKER"라는 번호판을 달았다. 그는 컴퓨터 불법침입을 계속했고, 몇 년 뒤 신용정보를 저장하는 컴퓨터 자료를 조작한 혐의를 받자 잠적했다.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지만 이에 대한 내용이 나중에 경찰 기록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1987년 무렵, 그는 성실하게 살고자 노력한 것 같다. 직업 훈련학교에서 함께 컴퓨터 교육을 받는 여자와 동거를 시작했지만, 이내 해킹에 대한 집착 때문에 불법 전화 신용카드 번호를 사용하게 되고, 결국 경찰이 이들의 아파트를 찾아오게 된다. 1987년, 그는 [산타 크루즈 오퍼레이션즈]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로부터 소프트웨어를 훔친 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36개월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987년과 1988년 사이에 그는 친구와 함께 [디지털 이큅먼트]사의 팔로 알토 연구소 과학자들과 전자전쟁을 벌인다. 미트닉은 이 회사의 미니컴퓨터 한 모델의 구동 프로그램을 얻고 싶어했는데, 그 중 팔로 알토의 연구소가 가장 침입하기 쉬운 것으로 판단하고 친구가 근무하는 회사의 컴퓨터를 이용해서 밤마다 침입을 시도했다. 연구소 측에서는 침입하려는 자가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았지만 연구소도 경찰도 FBI도 어디에서 침입하고 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전화망을 교란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트닉은 의리 있는 동료는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친구와 함께 활동하면서도, 낮이면 회사로 친구 상급자에게 전화를 걸어 세무서 수사관을 사칭하면서 친구가 세무관계로 조사받을 일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견디다 못한 친구는 상급자에게 미트닉에 대한 내용을 사실대로 털어놓았고, 상급자는 [디지털 이큅먼트]사와 FBI에게 연락했다. 회사측에서는 수백만 달러어치의 소프트웨어를 도난당했고 그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20만 달러 가까이 소요되었다고 주장했지만, 미트닉은 컴퓨터 조작 1회와 장거리 접속 암호를 불법소유한 데에만 유죄를 인정했다.
     그가 경찰에 체포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로, 이 때부터 그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제시한 특이한 거래조건 때문이었다.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1년간 교도소에서 지낸 다음 6개월간 컴퓨터 "중독" 치료를 받겠다고 한 것이다. 연방 법원 판사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컴퓨터 중독과 마약 중독이 비슷한 데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1990년 중반, 미트닉은 1년간 복역한 뒤 다시 6개월간 컴퓨터에 대한 강박을 치료받았다. 치료기간 내내 그는 컴퓨터 모뎀을 만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나중에 같은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미트닉은 라스 베가스로 옮겨, 광고 우편물을 발송하는 회사에서 하위직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취직했다. 1991년 그는 다시 옛 동네로 돌아와 아버지를 도와 건설현장에서 한동안 일하다가, 아버지의 친구 소개로 어느 사설 탐정 사무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취직하고 얼마 안 있어 누군가가 탐정 사무소 이름으로 불법적으로 상용 네트워크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알려졌고, 미트닉은 다시금 FBI의 수사표적이 되었다. 그해 9월, FBI는 그의 아파트와 직장을 수색했고, 1980년대 초 그와 함께 프리킹을 하던 한 동료의 집도 동시에 수색했다. 두 달 뒤 연방 판사가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1990년에 법원이 부과한 집행유예 조건을 어긴 것이 이유였다. 죄목은 두 가지였다. 불법적으로 전화회사 컴퓨터에 침입한 것과, 예전의 프리킹 동료와 어울린 것이었다. 친구들은 탐정 사무소측에서 미트닉을 모함한 것이라고 했는데, 진위가 어떻든 간에 FBI에서 그를 체포하러 왔을 때에 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1992년 말, 어떤 사람이 캘리포니아 자동차 관리국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공무에 사용하는 정확한 암호를 댄 다음, 어느 경찰 끄나풀의 운전면허 사진을 팩시밀리로 전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상한 눈치를 챈 담당자는 팩스 번호를 확인하여 위치를 알아낸 다음 그곳에 잠복조를 보냈다. 이들은 용의자가 그 곳을 빠져나갈 때에야 발견하고는 뒤를 쫓았지만, 상대방이 달음질이 빨라 놓치고 말았다. 허둥지둥 달아나던 사람은 전송받은 팩스를 떨구었는데, 미트닉의 지문이 묻어 있었다.
     이 일이 언론에 알려지자 지능적인 해커에 비해 당국이 무능하게 비치게 되었고, 그에게는 해커의 왕자(prince of hackers)라는 별명이 붙는다.

스토무 시모무라와의 대결
그가 마침내 붙잡히게 된 것은 어쩌면 자신의 기술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트닉을 체포하는 과정은 스릴러 영화를 방불케 한다. 2년 가량 종적을 감춘 그는 1994년 크리스마스 때 샌디에고에 소재한 국립 수퍼컴퓨터 센터 보안 전문가의 집에 있는 컴퓨터에 침입해 들어갔다. 일본인인 이 보안 전문가의 이름은 스토무 시모무라(Tsutomu Shimomura, 사진). 당시 시모무라는 겨울 동안 크로스컨트리 스키 휴가를 즐기려는 생각으로 캘리포니아 주 타호에 호수에 가 있었는데, 인터넷을 통해 수퍼컴퓨터센터에 연결되어 있던 그의 개인 컴퓨터가 그 사이에 침입을 당해 보안 관련 소프트웨어와 자료 파일 수천 개가 복사당해 빠져나가고, 그의 사무실 전화 자동응답기에는 조롱하는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시모무라는 누군가가 고도의 해킹 기술을 이용하여 자신의 컴퓨터로 침입한 것을 알고는 유즈넷(USENET)을 통해 전세계에 경고했다. 침입자는 IP 스푸핑(spoofing)을 비롯한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는데, IP 스푸핑이란 자신이 쓰고 있는 컴퓨터가 마치 상대방이 신용하는 컴퓨터인 양 속이는 방법이다. 상대방은 접속해 오는 컴퓨터가 정당한 사용자인 것으로 인식하여 안심하게 되고, 그 사이에 해커는 뒷전에서 자기 볼일을 마음대로 다 보는 것이다.
     시모무라는 스키 여행을 취소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해킹 기법을 총동원하여 FBI를 도와 침입자를 잡는 일에 몰두한다. 그는 컴퓨터 전문가들로 감시반을 구성하고,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침입자를 색출하기 시작했다. 그의 도움으로 수사관들은 어느 침입자가 전화국 컴퓨터를 통제하고 모토롤라, 애플 등 여러 회사로부터 자료를 빼내가고 상용 컴퓨터 통신 서비스 회사로부터 신용카드 번호 2만 여개를 훔쳐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대담한 행동 역시 미트닉의 특징이었는데, 이런 행동이 수사에 도움이 되었다.
     1995년 1월 27일, 시모무라의 파일을 비롯하여 NEC, 노키아, 모토롤라 등의 무선전화를 통제하는 소프트웨어가 웰(The Well)이라는 상용 컴퓨터 통신 서비스와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이런 파일을 바탕으로 시모무라는 이 침입자가 1992년 11월에 종적을 감춘 케빈 미트닉일 것으로 결론지었다.
     1995년 2월 초, 그는 침입자를 쫓아 산 호세의 넷컴(Netcom)이라는 서비스까지 추적해 들어갔다. 시모무라는 침입자가 노스 캐롤라이나 주 랠리에서 무선전화망을 이용해 접속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무선 전화업체 전문가의 협조를 얻어 침입자의 소재를 반경 500m 이내로 압축해 들어갔다. 2월 13일, 시모무라는 랠리로 가서 전화회사 전문가들과 함께 무선전화 주파수 방향탐지기를 이용하여 침입자의 소재를 더욱 좁혀들었다.
     2월 15일 새벽 두 시, 랠리 근교 어느 집에서 체포된 사람은 시모무라의 추측대로 케빈 미트닉이었다. 그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접속해 있었다. 이 때 미트닉은 31세, 시모무라는 30세였다.
     같은 날 공소법정에서 미트닉은 그 곳에 나왔던 시모무라를 처음으로 대면했는데, 그는 시모무라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그의 실력에 경의를 표한다는 말을 했다.

재판과 인권 문제
미라맥스(Miramax)라는 영화사에서는 그의 행적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편에서는 구명운동이 한창인데, 그는 1995년 2월에 체포된 이후로 보석이 허용되지 않은 채 내내 로스앤젤레스의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이다. 살인 등 강력범죄로 기소된 사람들도 보석이 허용되는 것에 비교하면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가 대두된다. 면회는 변호사와 혈육 외에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재판을 위해 2억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문서를 준비해야 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면서도 그가 법률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주당 5.5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동안 보석 등 재판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일로 법정이 몇 차례 열리기는 했지만,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심리는 아직 시작되지는 않았다. 케빈 미트닉에 대한 다음 재판은 1998년 4월 27일로 잡혀 있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담당 판사 말에 따르면 통상적인 방법으로 통상적인 잣대를 적용하게 될 것 같다. 기소된 죄목을 그대로 적용하면 최고 20년까지 징역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일반인의 컴퓨터의 이용에 대해 합법과 불법의 한계선을 긋는 선례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 해커와 인간 해커
시모무라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공부했지만 학위는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복잡한 기술적인 문제를 마치 드라마 [스타 트렉]Star Trek의 스폭(Mr.Spock)처럼 능숙하게 풀어나가는 솜씨를 지니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초창기 해커들의 윤리관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족을 위해 우수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해커―컴퓨터 혁명의 영웅들]Hackers: Heros of the Computer Revolution의 저자 스티븐 리바이(Steven Levy)는 시모무라가 나눔의 정신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미트닉은 탈법적인 성향이 첨단 기술과 결합한, 소위 '사이버펑크(cyberpunk)'의 전형이다. 하지만 그가 해커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사실 컴퓨터에 대한 지식보다도 인간에 대한 통찰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조직이 정보를 어떻게 보관하는지를 잘 꿰뚫고 있었고, 원하는 정보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어떻게 얻어낼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경찰이 보기에 미트닉이 이런 범죄를 저지른 동기는 명확하지 않다. 체포되던 당시 그는 실리콘 밸리의 알만한 백만장자들을 위시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신용카드 정보를 감추어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런 정보를 이용하고자 한 흔적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는 미국의 전체 컴퓨터망 위에 군림하는 신적인 존재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부당하나마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컴퓨터 시스템을 방어하는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월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에만 그토록 몰두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가 빼내간 각종 정보는 자신의 지식을 늘리는 한편 침투에 성공한 증거물로 삼고자 한 것은 아닐까.

자료:

차례
  1. 인터넷과 표현의 자유 - 제이크 베이커 사건
    <시민과 변호사>, 1998년 4월호
  2. 인터넷 보안 - 해커와의 전쟁
    <시민과 변호사>, 1998년 5월호
  3. 에로티시즘과 포르노 - 규제와 자율의 갈림길에서
    <시민과 변호사>, 1998년 6월호
  4. 컴퓨터와 한글 - 우리말 살리기
    <시민과 변호사>, 1998년 7월호
  5. 인터넷 카메라 - 보여주고 싶어요
    <시민과 변호사>, 1998년 8월호
  6. 컴퓨터와 2000년 문제 - 세상 끝날?
    <시민과 변호사>, 1998년 9월호
  7. 인터넷과 한글 - 영어 모르면 문맹?
    <시민과 변호사>, 1998년 10월호
  8. 인터넷형 "번지내 투입" - 전자우편과 스팸
    <시민과 변호사>, 1998년 12월호
  9. 긴급진단 - 밀레니엄 버그
    <시민과 변호사>, 1999년 1월호
  10. 인터넷 주소 투기 - 앉으면 주인?
    <시민과 변호사>, 1999년 2월호
  11. 인터넷과 전자상거래 - 무일푼으로 사는 세상
    <시민과 변호사>, 199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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