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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Once the hand is laid on the Pluff
    <TODAY>, 1988년 9월호
  2. No "Ploblem"!
    <TODAY>, 1988년 10월호
  3. Bach, BARK!
    <TODAY>, 1988년 11월호
  4. Even dogs can understand English
    <TODAY> 1988년 12월호
  5. Post-Christmas Letdown After Santa Died
    <TODAY> 1989년 1월호
  6. Neptune's Rebel
    <TODAY> 1989년 2월호
Once the hand is laid on the Pluff
<TODAY>, 1988년 9월호
길지 않은 내 인생 경력에 '뉴질랜드에서의 1년'이 보태지게 된 것은 작년 4월의 일이었다. 1년간 거기서 지내면서 학기중에는 신학생으로, 방학 때에는 선원선교센타(Seafarers' Centre)에서 외항선원들을 대상으로 봉사와 상담활동을 하는 채플린(Chaplain)의 역할을 수행할 목적으로 그 곳의 초청을 받아 가게 된 것이었다.
cultural difference라는 것을 단단히 마음에 새겨 두었던지라, 'internationally lost'를 염려하는 친구의 농담도 가벼이 흘리고 김포공항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럭저럭 농담도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나름대로' 구사할 수 있었으니까, 도중에 방콕과 시드니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비행기 여행을 권하고 싶지 않다. 기내에선 쉴 새도 없이 먹을 것이 나오는데, 그것은 비행기라는 것이 워낙 공간이 좁기 때문에 가능하면 앉아서 턱운동만 하라는 뜻일 게다. 그렇게 이삼십 시간을 여행하고 나면 jet lag라는 증세를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그만큼 지루하고 불편하고 갑갑한 것이 비행기 여행이다.

westisland.gif뉴질랜드는 호주 바로 곁에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호주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렇다. 뉴질랜드 입장에서 본 호주를 재미나게 설명해 주는 그림을 어떤 사람이 입은 티셔츠에서 본 일이 있다. 셔츠에는 커다랗게 뉴질랜드의 두 섬이 그려져 있었고 그 왼쪽에 조그맣게 호주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큰 두 섬은 각각 NORTH ISLAND와 SOUTH ISLAND라 쓰인 반면 조그만 호주에는 WEST ISLAND라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커다란 두 섬은 합하여 아닌 게 아니라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면적의 세 배 가량 된다. 그렇지만 인구는 고작 3백50만 정도라서 서울 인구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참고 삼아 밝혀 두지만 여기서는 羊口가 人口의 20배쯤 된다.) 말하자면 뉴질랜드에서도 가장 큰 도시인 Auckland에서 매일 버스로 downtown까지 출퇴근한다면, 필경은 1개월 이내에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의 얼굴과 자리를 익힐 수 있게 되어, 어느 날 한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어쩐 일일까'하고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될 정도이다. 물론 downtown에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온종일 공원에서 빈둥거리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기억할 수 있는 얼굴이 거의 없으니까.

이 도시 Auckland가 나의 목적지였다. 문제는 도착하면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짐이라고는 책 몇 권과 수첩이 든 가방과 자질구레한 옷가지가 몇 개 든 옷가방이 전부였는데, 꼬리표를 달아 화물칸으로 보낸 옷가방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도중에 갈아 타면서 다른 비행기 속에 버티고 나오지 않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결국에는 공항 직원에게 내가 지낼 성공회 신학교 주소를 알려 주고는 공항을 떠났다.
      짐작컨대 발음이란 것이 여기서 주범이었던 모양이다. Auckland와 Oakland의 발음이 유사하다는 사실이, 몇 개 되지는 않지만 내겐 중요하기 이를 데 없는(?) 내 양말과 속옷을 미국으로 납치해 갔었나 보다. Oakland는 San Francisco 옆에 있는 미국 도시. 그 녀석들, 나보다도 더 여행을 많이 있으니 팔자가 나보다도 좋았다, 비록 납치된 것이기는 하지만.
      다행히도 며칠 뒤 Continental Airlines는 그 인질들을 몸값도 요구하지 않은 채 택시로 내가 지내는 곳까지 갖다 주었다. 실제로 이 Au-와 Oa-와의 유사성 때문에 짐을 잃어 버리는 일이 Auckland로 여행하는 사람들에젠 꽤 있다고 했다.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만도 적지 않은 숫자가 한때는 자기 소유였으나 이제는 '국제미아'가 된 짐들을 아쉬워 하였다. 내 경우는 그래도 다행한 편이었다고나 할까.

한국 사람이 영어를 할 때 흔히 하는 실수가 장(長), 단(短)모음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있던 기숙사의 사람들은 다들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 선원선교 관계로 오는 사람이니 더부룩한 구레나룻에 털복숭이 팔과 다리, 그리고 터질 듯한 허리에 삐져 나온 배꼽 근처의 구릿빛 살갗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들이 나를 보는 순간 모든 기대는 무너졌다. 그리하여 거듭 내 체류 목적을 묻는 것이었다.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해 주었다. "I am supposed to work for the seamen's mission."
      그들은 역시 의아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이유가 약간 달랐다. 장, 단모음의 구별에 소질이 없던 내 입에서 빠져 나온 seamen이라는 말이 그들에겐 좀 뜻밖으로 들렸던 것. 장황하게 설명을 해 주니까 그제서야 그들은 진지하게 바라보던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 말이 그들에겐 semen으로 들렸다는 것을 깨달은 나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semen은 사전을 참조 바란다.
      그 후로 나는 seamen이라는 말을 바꾸어 seafarers로 이야기했다.

며칠간은 내가 무엇인가에 철저히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 위험할 때도 있다는 것을 '목숨 걸고' 느꼈다. 목숨을 걸게 된 그 대상은 우리와는 반대로 되어 있는 차선이었다. '자동차는 오른쪽'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이었으니까. 건널목이라 할지라도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 길을 건널 때는 우선 차가 다가 오리라고 생각되는 왼쪽을 쳐다보면서 차도에 발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 우리네 습관이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가장 안전하게 길을 건널 참이었는데, 뉴질랜드에서는 그것이 장례식으로 연결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습관적으로 발걸음을 떼면 거의 예외 없이 내 오른편에는 갑작스레 뛰어든 나 때문에 불의의 기습을(?) 당한 자동차가 나를 노려보고 멈춰 있었다.

Auckland에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부활절이 닥쳤다. Alison이라는 여학생이 기숙사 휴게실에서 부활절 달걀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뭔가 내가 했던 말에 또한번 나는 그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부활절 달걀을 만든다'는 의미의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아서 "You are producing Easter eggs."라 했던 것. 그 순간 거기 모여 있던 학생들이 박장대소했다. 부활절 달걀을 '낳고' 있다는 뜻이 되었으니, 그것도 여학생에게. 본의 아니게 실수한 것이 brilliant joke가 된 것이다. 부활절이 되자 Alison은 내게도 달걀을 하나 주었다. 근데 그 달걀, 보나 마나 무정란이었을 게다.

비록 영어에 관한 지식이 꽤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나는 영어에 있어서 초보자에 불과했다. 가장 회의를 많이 느끼는 때는 역시 여러 사람이 두서없이 잡담을 할 때이다. 수업에 들어갔을 경우에는 일정한 주제에 특정한 단어들이 주류를 이루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영어로 생각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AFKN을 30% 정도 알아 듣는다면 누구든 그 사람은 유학 가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잡담의 경우는 다르다. 유머감각도 우리나라와는 다른 데다가, 입과 귀와 또 그 입과 귀를 들락거릴 소재가 모두 혼연일체가 되어야만 잡담의 '예술'이 탄생되기 때문에 그 예술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모든 것을 준비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내 스승으로 삼은 것이 TV였다. 어떤 의미에서 내 수업은 한밤까지 계속된 것이었다. 낮엔 내 공부, 밤에는 영어 공부. 워낙 바보상자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게 TV가 없다는 것이긴 했어도) 그건 예외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잡담에서 유효표를 던지기는 쉽지가 않았다. 예를 들자면 수업시간에 누군가 농담을 하면 다들 웃었다, 물론 나도. 그러나 거기에는 극히 짧기는 하나 시간차가 있었다. 웃기는 했지만 웃는 까닭은 그들과 전혀 달랐다. 농담을 완전히 알아들었기 때문에 웃은 것이 아니라 분명히 우습기로 되어 있는 이야기에, 말한 사람에게는 미안하게시리 웃지 않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다행하게도 그 학교에 모여든 상당수의 비영어 사용권 학생들도 나와 꼭같은 처지에 있었다. 물론 그들도 웃고 나도 웃는다,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어쨌든 다들 그 '우스운' 이야기 때문에 웃는 것이었다.
      또한 나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 과감히 영어를 말하는 시도를 했다. 머리 속에서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은 필요 없었지만, 문법적이고 딱딱한 내 표현은 그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이삼백 여명의 대중 앞에서는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 들으라'는 식의 복선을 깔고 딱딱한 표현에 실수를 더하여 연설한 적도 많았다. 꼭 같이 '그 책 있느냐'는 뜻이지만 문법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표현인 'Do you have the book?'보다는 대개 'Have you got the book?'이라는 표현을 쓴다. 가까운 사이일 경우는 'Got the book?' 하고 줄여서 묻기도 한다. 거기에 덤으로 내 발음과 영어의 수많은 예외가 끼어들면 많은 경우에 있어서 나의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듣는 사람이 내가 broken and mispronounced English를 써서 말하고자 하려는 것을 해석해 주었으니까.

어느날이었다. 그 날 나는 mothering 하기를 좋아하는 Christine이라는 기숙사생과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경 한 귀절을 인용할 필요를 느꼈다. 그 귀절은 바로 이것이다. 'Once the hand is laid on the plough, no one who looks back is fit for the Kingdom of God.'(Luke 9:62) 그 뜻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적당치 않다'는 것이었지만, 이내 나는 영어에 수많은 예외가 있다는 것을 실감해야만 했다. Christine도 신학생이니 그 정도 귀절은 쉽게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주저 없이 읊어 내렸다. 문제의 단어는 plough였다. 몇 개의 단어가 plough의 출마를 지지하고 있었다 -- 내 머리 속에 rough, cough, tough 등이 떠오른 것이었다. 나의 확신에 그런 증거까지 나서자, 조금치의 망설임 없이 실수를 하기란 한결 쉬웠다.
      심각하게 듣고 있던 Christine의 표정이 더욱 골똘해지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더 진행시키려는 찰나에 그녀가 내게 물었다. "What do you mean by plough?" 뜻밖의 질문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보기 힘든 물건이었으므로 나는 설명했다. "The thing you use when you cultivate the field." 그녀는 다시 한번 물었다. "Plough?" 잠시 생각하던 그녀의 표정이 진지한 것에서 파안대소로 변해 가는 과정이 더욱 볼만한 것이었다. 문제의 그 단어가 내 입에서는 pluff로 발음된 때문이었다. 사건은 그렇게 되어 버렸다. 심각하게 인용한 그 구절이 폭소를 자아낸 것이다. 물론 나도 온통 웃고 말았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내가 뭐라고 언어의 예외를 탓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내 실수는 이해할 수 있는 사항에 해당했다. 아까 달걀을 낳고 있던 Alison의 성도 Clough인데, Cluff로 발음해야 할 것을 사람들은 대개 Clow로 발음한다고 했으니까.
      하여간 그렇게 새로 생겨난 단어 pluff는 꽤 오랫동안 내 별명이 되었고, 기숙사 학생들은 내가 귀국할 때 우정의 선물로 티셔츠를 선물했는데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 앞면에는 "I've been to New Zealand," 뒷면에는 "And put my hand on the PLUFF."

차례
  1. Once the hand is laid on the Pluff
    <TODAY>, 1988년 9월호
  2. No "Ploblem"!
    <TODAY>, 1988년 10월호
  3. Bach, BARK!
    <TODAY>, 1988년 11월호
  4. Even dogs can understand English
    <TODAY> 1988년 12월호
  5. Post-Christmas Letdown After Santa Died
    <TODAY> 1989년 1월호
  6. Neptune's Rebel
    <TODAY> 198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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