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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Once the hand is laid on the Pluff
    <TODAY>, 1988년 9월호
  2. No "Ploblem"!
    <TODAY>, 1988년 10월호
  3. Bach, BARK!
    <TODAY>, 1988년 11월호
  4. Even dogs can understand English
    <TODAY> 1988년 12월호
  5. Post-Christmas Letdown After Santa Died
    <TODAY> 1989년 1월호
  6. Neptune's Rebel
    <TODAY> 1989년 2월호
No "Ploblem"!
<TODAY>, 1988년 10월호
뉴질랜드에서는 계절이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이다. 여기서 한창 '저러다가 사람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다니게 되지나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하는 때에 뉴질랜드에서는 겨울이다. 한편 여기서 조심스런 걸음으로 얼어붙은 눈을 밟고 다니는 동안 거기서는 한바탕 모기와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내가 출국한 것이 작년 4월의 일이니 여기서 겨울을 다 지내고 30시간의 여행으로 여름도 모두 보내 버렸는데, 도착하니 때는 가을이라 아직 씨앗을 뿌리지 못한 모기들이 한국에서 온 이 색다른 맛의 피로 대를 이어 가려고 아우성이었다.
      날씨 얘기를 하는 것은 재미난 표현의 영어를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말에 이런 표현이 있다 -- "찐다," "푹푹 찐다." 그러니까 달걀이 익을 정도라는 얘기도 되겠다. 마찬가지로 영어에도 이런 표현이 있다. "It's boiling." 라면을 넣고 뚜껑을 덮으면 3분 안에 맛있게 요리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씨를 일컫는 말이다. 이와 뜻은 비슷하지만 어감이 묘하게 차이나는 말이, I'm cooking. 뭔가를 요리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요리되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렇게 요리되는 사람은 없어도 여기저기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It's too hot이라는 말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실감나는 표현이다. 언어의 과장은 동서양을 막론해도 되는 모양이다.
      반대로 춥다는 표현도 재미 있다. 내가 뉴질랜드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겨울'이 되었는데, 섣달이나 정월이 아니라, 때는 '오뉴월'이었다. 남반구라서 계절이 우리나라와는 반대라는 사실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학교 도서관에서 마악 나오려는데 누군가가 들어오면서 한 마디 내뱉았다. "It's freezing out there." 내가 지내던 Auckland에도 간혹 얼음이 언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 말을 곧이 듣고 나가 보았으나 어디에도 얼음은 없었다. 물론 기숙사 냉장고의 냉동실에는 족히 1년은 됐음직한 얼음들이 칡넝쿨 엉키듯 얽혀 있었지만.
      한국어 발음에는 vf, r이 없다. 물론 그중에는 음운이 처한 환경에 따라 소리가 나는 경우도 있지만, 엄밀히 따져 볼 때에 이러한 발음이 우리말에는 없다. 우리말 발음체계에 이러한 것들이 없으니 발음이 잘 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배울 때에야 신경을 써서 배우지만, 막상 말을 하려면 이미 입에서 v와 b가, f와 p가, r과 l이 서로 섞이고 뒤바뀌어 튀어 나오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고 자부해도 될 게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징그럽게도 잘 구별한다'고 했으니까. 문제는 한국인이 등장하는 TV 광고였다. 어떤 여행자용 신용카드 광고였는데, 여행다니는 한 쌍의 외국인이 현금을 잃어 버리고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으로 광고는 시작되었다. 그러자 한켠에서 색동 한복을 입은 아리따운 한국 아가씨가 등장하여, 가진 카드가 뭐냐고 묻자 그 외국인 관광객은 무슨무슨 카드라고 대답했다. 광고의 배경이 된 곳은 우리나라의 "비원"이라고 자막이 나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뉴질랜드의 TV는 확실히 좋은 스승이었다. 남의 실수로 나는 거울삼을 좋은 계기를 얻은 셈이었으니까. 그 아가씨는 관광객들에게 서슴없이 대답을 했다. 어쩌면 그렇게 서슴없이 실수를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다름 아닌,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TV 광고에서. 여기서, 그 광고에 출연한 아가씨에게 사과를 해 두고 싶다. 남의 실수를 들추는 것은 졸은 일이 아니니까. 아가씨의 대답은 이러했다: No ploblem. 뜻은 분명했다. '문제 없어요.'
      그 때 휴게실에서 TV를 보던 사람은 나 말고도 뉴질랜드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 귀에 'ploblem'이라는 말이 들리자 일제히 나를 주목했다. 얼굴에는 자못 유쾌하다는 빛을 가득 담고서.
      독자 여러분들도 실제 이런 발음들을 구별해 보기 바란다. b와 v를 제외하고도 rl, pf만으로 단어를 넷 만들 수 있다. ply, pry, fly, fry. 이 넷 모두를 똑똑히 구별할 수 있으면 합격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런데 잊지 않아야 할 사실이 언어의 근본 목적, 즉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므로, 우리가 상대방의 말을 알아 듣고 상대도 우리 발음을 알아 듣는다면 그걸로 만족하는 것이 타당하다. 영어를 배운다는 것이 한국인임을 그만둔다는 것을 뜻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으니까 말이다.

뉴질랜드엔 목조 건물이 많다. 페인트를 매년 칠해 줘야 깨끗하고 산뜻한 느낌이 나기 때문에 유지비가 많이 들긴 해도, 우선은 목재 값이 싸므로 목재로 대부분 집을 짓는다. 블록이나 벽돌은 대체로 수입 자재라서 그런 걸로 담장을 쌓는다면 상당히 잘 사는 집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목재로 짓건 벽돌로 짓건 습기 문제로 방바닥 높이는 지면에서 약 70~80cm 정도 올려 짓는다. 허리 높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무난하다.
      뉴질랜드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약간 의아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길가에 'House Removal'이라는 상호를 붙인 자그마한 트럭이 한 대 서 있었고, 그 차로 온 듯한 인부 서넛이 목조 가옥 한 채를 뜯고 있었다. 여기까지야 의아할 것 하나 없지만, 문제는 그들이 집을 뜯는 순서였다. 처음에는 목재를 깨끗이 회수하려고 조심스레 뜯나 보다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집을 밑에서부터 허물고 있었던 것이다. 옛날에 어떤 바보 형제가 집을 지붕부터 지었더라는 얘기는 있지만, 집을 밑에서부터 뜯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하여간 버스를 타고 지나다 보게 된 광경이므로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에 같은 장소를 또 지나게 되었다. 바야흐로 방바닥을 제외한 아랫도리는 모두 뜯겨 나가고, 그 자리에 대신 블록 몇 장으로 임시 기둥 삼아 우리가 흔히 '집'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원래 허리 높이 그대로 받쳐 놓았다. 점입가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집을 아랫도리부터 허물더니 이제는 뜯다가 그만두고 공중에 띄워 놓다니. 점점 모를 일이라 생각하면서 그 자리를 지나쳤다.
      다음날이었다. 오전에 거기를 지날 일이 있어서 일찍 나가 보았다. 밑동부터 허문 집이 어찌 되었나 궁금하기도 하여 일찍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어제만 해도 그나마 서 있던 집이 온 데 간 데 없이 증발한 것이다. 세상에, 하룻밤 새에 집이 사라지다니! 흥부전인가 놀부전인가에선 하룻밤 새에 기와집이 생겨났다고 했지만, 이건 뭐 흥부전도 아니고...
      사연은 이러했다. 그래도 집은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집이 서 있던 자리에 커다란 자동차 바퀴 자국이 네 줄로 패여 있었다. 알고 보니 그런 식으로 집을 통채로 실어 옮겨 가는 일이 흔했다. 그렇게 밑을 헐어 내고는 그 밑으로 커다란 트레일러를 대어 그 위에 집을 앉히고는 도로가 한산할 때에 그대로 실어 나간단다. 보통은 집 안의 세간과 사람들이 이사를 하는 것이지만, 집 자체가 이사를 하는 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그렇게 옮겨진 집은 다른 곳에 잘 설치해서 다른 가족이 살게 되겠지만, 어쨌건 그들은 벽에 그려진 낙서와 처마 밑의 거미줄까지 모조리 구입할 수 있을 게다. House Removal이란 말의 뜻은 그래서 가옥 철거가 아니라 가옥 이전, 즉 House Re+Moval이었다.
      그렇게 집을 간단히 며칠 만에 떠내간 그 자리에는 약 3개월에 걸친 공사 끝에 새로이 목조 건물이 들어섰다.

그리스어나 라틴어가 없었다면, 혹은 영어권과 라틴어권이 서로 접촉할 기회가 없었더라면 영어라는 언어에 오늘날 같이 수많은 예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영어는 특히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영어에서 성(sex)의 구별은 잘 알려져 있는 줄 안다. 예를 들면 man과 woman은 남자와 여자라는 의미가 있다. 대개 man을 '사람'을 뜻하는 inclusive language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엄밀히 따져 볼 때 그 뜻이 변했다. 즉 man은 남자만을 가리키는 말로 변화화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사람'을 나타내는 단어를 쓰려면 man이 아니라 person 또는 people을 써야 정확하다. 하긴, 이런 식으로 엄밀히 구별할 필요가 아직 없기는 하다. 신문이나 잡지 기사나 많은 서적에서는 이 같이 '사람'을 뜻하는 man을 아직 많이 볼 수 있으니까. 헌데 내가 만난 뉴질랜드 여성 상당수는 man 하면 자기네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느낀다고 했다.
      한편 man과 woman은 사람에게만 쓰이는 말인데, 동물까지 두루 쓰이는 말은 역시 male과 female이다. 이렇게 볼 때 man은 남자, woman은 여자, 그리고 male은 수컷, female은 암컷이 될 것 같다. 그게 그 말의 본래 어감에 더 잘 어울린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의 신상명세서에서 성별 난에 M이라 쓴다면 그건 '남자'라는 뜻보다는 '나는 수컷입니다' 하는 말맛을 풍긴다. F도 역시 여자라기보다는 암컷이라는 맛이 난다.
      M과 F의 구별은 man과 woman과 함께 영어 사용권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성의 구별은 이런 경우 그래도 쉬운 것이다. host와 hostess, actor와 actress, steward와 stewardess도 여전히 쉬운 편이다. 역시 성의 구별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의 배경이 된 사고방식을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고방식을 모른 채 무조건 단어만 외우고 문법만을 고집한다면 말이야 더할 나위 없이 문법적이 되겟지만 표현 효과나 표현의 정확성에 있어서는 도저히 손쓸 수 없는 것이 되기 쉽다. 그래서 앞서 성의 구별이 잘 알려져 있다고 한 말은 시험 점수를 놓고 볼 때 그렇다는 말이 된다. 막상 구별하여 말하려 하면 우리 언어의 archives에 파묻혀 있는 용어들을 그때그때 호출해 내기란 쉽지 않다. 또한 우리말에서 성을 구별하는 용어가 영어처럼 혹은 라틴어나 그리스어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실상 사고방식 전환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왕은 king이고 (남왕은 Southern King이다) 여왕은 queen이다. 그러나 이를 번역하면 남임금과 여임금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도매금으로 '임금'이 된다. 순수한 우리말로 옮겨 암임금, 수임금이 아니라 그냥 '임금'이다. man과 woman은 암사람, 수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되는 것이다. he는 그이, she는 그녀 -- 이렇게 옮기는 것은 일본말 영향이다. 한글 식은 두루 '그 사람'이다. 한자말을 섞을 때에야 비로소 '그 남자', '그 여자'가 된다. 한자말이 우리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그럭저럭 우리도 host와 hostess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한 것이다. 수컷 명사 뒤에 암컷이라는 뜻인 -ess만 붙이면 된다. 그러나 여기에 예외가 있다. 여럿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hero와 heroine을 들 수 있다. 어원의 차이도 있겠지만 host-hostess와의 차이는 아무래도 사고방식에 있는 것 같다. host 없는 hostess 없고 hostess 없는 host 없다는 것이 그네들 사고방식인 것 같다. 우리말에도 안주인-바깥주인이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말의 경우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여하간 hero와 heroine의 경우는 판이하게 다르다. heroine이 없는 hero도 있을 수 있고 hero가 없는 heroine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
      이들 단어를 말할 때 예의 그 archives에 있는 단어가 나오지 않아 heroess라 해도 상대방은 알아 들을 것이다. 단지 듣는 사람이 잠시 어리둥절해 하는 듯하다가 화안하게 웃으며 heroine이라고 말해줄 것만 창피하게 여기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거듭 강조하지만, 언어의 기본 구실이 의사소통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broken and mispronounced English를 말한다 하여 쑥스러워할 것은 없다. 물론 correct and precisely pronounced English를 말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차례
  1. Once the hand is laid on the Pluff
    <TODAY>, 1988년 9월호
  2. No "Ploblem"!
    <TODAY>, 1988년 10월호
  3. Bach, BARK!
    <TODAY>, 1988년 11월호
  4. Even dogs can understand English
    <TODAY> 1988년 12월호
  5. Post-Christmas Letdown After Santa Died
    <TODAY> 1989년 1월호
  6. Neptune's Rebel
    <TODAY> 198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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