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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읽을거리뉴질랜드 방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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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 BARK! | |||
<TODAY>, 1988년 11월호 뉴질랜드, 영어의 뜻을 풀이하자면 새로운(New) 정열의(Zeal) 땅(Land)이다. 언제나 이름에는 누군가 붙인 사람의 해석이 내포되어 있듯이, 마찬가지로 이 이름에도 글자 그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아마도 인간이 살 수 있는 새로운 별이 발견되면 이와 비슷한 이름이 붙을지도 모른다. 헌데 뉴질랜드라는 이름이 갖는 뜻은 거기 이주해 온 백인들에게만 통하는 뜻이었음에 틀림 없다. 까닭은 백인들이 이주해 오기 전부터 거기에는 마오리(Maori)족이라 불리는 원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옛부터 거기서 살고 있었으니 그들에게는 새로운 땅일 리가 없고, 그래서 신천지에 대해 갖는 정열도 없었을 테니, 이 이름은 처음 의도한 이름과는 다른 의미로 그들 원주민들에게 느껴졌을 것이다.그들에게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아오테아로아(Aotearoa)'. 이것이 그들이 자기네가 살고 있는 땅에 붙인 이름이다. (어차피 그들에겐 문자가 없었으니 이것은 Aotearoa라 하나 我吾泰雅勞阿라 하나 마찬가지이다.) 이 이름은 역시 원주민인 마오리 사람들 중 소위 의식화한 사람들이 쓰는 이름인 셈이다. 그 뜻은 '길고 흰 구름의 땅'이다. 이름이 시사하듯이 이 나라에는 구름이 많고, 그래서 덤으로 비도 많이 온다. 물론 태풍(Cyclone)이 불면 비도 억수 같이 쏟아지지만, 태풍 때가 아니라도 년중 고루 비가 오는 편이다. 어느 정도이냐 하면, 거리에서 다니다 보면 우산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젖고 마르고 하기를 하루에 서너 번 하기는 마찬가지일 정도이다. 금방 비가 내렸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말짱한 하늘이 되어, 들고 있던 우산이 말라 가는 것이 보인다. 그러니 우산 없이 길을 다니면서 비가 내리면 그냥 맞고 다니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하여간 구름이 많아 뭉게구름이 끼인 하늘은 '고향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무척 아름답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마오리족이라 해도 순수한 마오리는 흔하지가 않다. 정부에서 연금을 지급할 목적으로 분류하는 바에 따르면 순수한 마오리의 16분의 1만 되면 '마오리'로 분류한다. 4대 할아버지 할머니 중 한 분이 순수한 마오리이면 마오리가 되는 셈이다. 금세기 초까지는 마오리족에 대한 백인들의 묵시적 냉대가 심했지만 현재에는 법률상 모두 평등하다. 어쨌든, 이렇게 따져도 마오리족의 비율은 전체 인구 3백50만의 1할인 35만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지내던 성 요한 대학의 몇 명 안 되는 기숙사 학생 중에 괴짜 학생이 둘 있었는데 (나까지 포함하면 셋이지만) 그 중 Russell이라는 학생이 정부 분류에 의하면 마오리였다. 다른 괴짜의 이름은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우던 영어 교과서에 나오던 Bill이라는 이름인 백인 학생이다. 이들 둘이 시내 나들이를 하는 날은 그야 말로 '사고 나는' 날이었다.이렇다 할 말썽은 피우지 않지만, '저만치 떨어져서 걸어 주었으면' 싶을 정도는 족히 된다. 그래도 그들과 나들이를 가는 것이 혼자 가느니보다는 훨씬 재미 있다. 어느 일요일 아침, 다들 나들이를 가고 혼자 기숙사에 남아 내 방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워낙에 클래식 중에서도 실내악이나 독주곡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날도 바하의 오르간 독주곡인 환상곡과 푸가 G단조(Fantasia and Fugue in G Minor)를 제법 볼륨을 높여 듣고 있었다. 한동안 음악을 듣다가 문득 방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둘러 보니 두 괴짜들이 제각기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뒤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I thought there was a High-Mass going on here." 특히 엄숙한 교회 예식에 오르간이 많이 사용되는 것에 견주어 나의 음악을 말한 것이었다. 그러길래 무슨 음악인지 그들이 궁금해 할 것 같아서 나도 한 마디 하였다. "Bach." 이로써 나는 또 하나의 교훈을 얻은 셈이었다. 뭔고 하니, 영어에 말장난(pun)이라는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날의 교훈이었다. 값진 교훈이었다. 그들의 반응이 더욱 볼만했다. Bach라는 말에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Rf, rf! 하고 '짖어 대는' 것이었다. 인간이 내는 이 개 짖는 소리는 그들의 음치 기질에도 불구하고 꽤 음악적으로 들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뜻밖이라 할 사건 아닌 사건이 또 하나 생겼다. 누가 그랬을까 하고 한동안 생각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마침내 범인을 찾아 내었다. 기숙사에는 화장실이 여섯 군데 있었는데, 그 중 둘은 WOMEN이라 표시되어 있고, 둘은 MEN, 나머지 둘은 아무 표시가 없는 화장실이었다. 표시가 없는 화장실은 unisex, 즉 남녀공용 화장실이었다. 웬 남녀공용인가 할지도 모르지만 여성해방과 남녀평등을 중요시하는 학교에서 그런 화장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었다. 문패가 WOMEN으로 된 곳에서는 아무런 특별한 문제가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사건은 나머지 화장실에서 벌어져 있었다. 소변기가 늘어선 곳에 이런 쪽지가 나붙어 있었던 것이다. "GENTLEMEN, PLEASE STAY CLOSER. IT COULD BE SHORTER THAN YOU THOUGHT." 대명사 IT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알면 이해가 될 것이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한 방울 한 방울이 몹시도 거북살스러웠던 모양이다. 하여간 사건의 주인공은 우리나라 어선 기지가 있는 Fiji라는 나라에서 온 Viliami라는 학생이었다. Fiji는 남태평양에 있는 조그만 섬나라. 그에게는 특징이 하나 더 있었다. 피부 빛깔이 검었는데, 상상이 가겠지만 흑인들은 머리칼도 몹시 꼬불꼬불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목수들이 귀에 볼펜을 꽂은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가 머리칼에다 볼펜을 꽂은 모습을 보면 좀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볼펜을 머리에 파묻어 놓고 배구나 당구(snooker)를 썩 잘 하는 품은 일류였다. Kathryn이라는 이름은 영어로 된 이름 중에는 흔하지 않은 축에 들어간다. 물론 우리말로 된 이름을 살펴도 이 이름은 희귀하겠지만. 흔히 쓰는 이름은 Catherine인데 (발음은 같다), 그렇게 이름지은 연유를 물었더니 Kathryn은 아주 간단히 대답했다. "I don't know. My father gave that name." 그래도 역시 이름에 대한 마음 씀씀이는 다들 꼭 같은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을 잘못 표기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기숙사는 괴이한 인물의 백과사전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결혼을 않은 사람으로서는 나이가 꽤 된 독신자들만 살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명물이 또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이 명물은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 했다. Robert라는 영국 태생의 학생이 그 주인공이다. 영국에선 고등학교 교사로 있었다고 한다. 그가 걸작인 이유는, 두고 보면 알겠지만 우선 교사 시절 별명이 Hitler였다는 것을 참고로 해야 될 게다. 한 때에는 '선생님'이었으나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 학생이 된 그에게는 좀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어느 일요일 낮에 갑자기 복도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려 오길래 나가 보았더니, 샤워를 하고 나온 듯한 Robert가 가운의 옷깃을 꼬옥 여민 채 냅다 달아나고 있었고, 그 뒤를 Muru라는 마오리 교수의 부인 Lorraine이 추격하고 있었다. Lorraine 역시 짖궂은 데가 있었다. Robert가 가운 안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옷깃을 펄럭이며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데 Lorraine이 그만 그 사실을 알아버렸고, 그래서 Lorraine은 그 적나라한 자태를 전시하려고 그를 추격한 것이었다. 오랫만에 진짜 누드 쇼를보려고 우리는 기대했는데 시도는 무의로 끝났다. 그의 습관은 샤워 후 가운'만'을 걸친다는 것만이 아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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