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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Once the hand is laid on the Pluff
    <TODAY>, 1988년 9월호
  2. No "Ploblem"!
    <TODAY>, 1988년 10월호
  3. Bach, BARK!
    <TODAY>, 1988년 11월호
  4. Even dogs can understand English
    <TODAY> 1988년 12월호
  5. Post-Christmas Letdown After Santa Died
    <TODAY> 1989년 1월호
  6. Neptune's Rebel
    <TODAY> 1989년 2월호
Bach, BARK!
<TODAY>, 1988년 11월호
뉴질랜드, 영어의 뜻을 풀이하자면 새로운(New) 정열의(Zeal) 땅(Land)이다. 언제나 이름에는 누군가 붙인 사람의 해석이 내포되어 있듯이, 마찬가지로 이 이름에도 글자 그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아마도 인간이 살 수 있는 새로운 별이 발견되면 이와 비슷한 이름이 붙을지도 모른다. 헌데 뉴질랜드라는 이름이 갖는 뜻은 거기 이주해 온 백인들에게만 통하는 뜻이었음에 틀림 없다. 까닭은 백인들이 이주해 오기 전부터 거기에는 마오리(Maori)족이라 불리는 원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옛부터 거기서 살고 있었으니 그들에게는 새로운 땅일 리가 없고, 그래서 신천지에 대해 갖는 정열도 없었을 테니, 이 이름은 처음 의도한 이름과는 다른 의미로 그들 원주민들에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아오테아로아(Aotearoa)'. 이것이 그들이 자기네가 살고 있는 땅에 붙인 이름이다. (어차피 그들에겐 문자가 없었으니 이것은 Aotearoa라 하나 我吾泰雅勞阿라 하나 마찬가지이다.) 이 이름은 역시 원주민인 마오리 사람들 중 소위 의식화한 사람들이 쓰는 이름인 셈이다. 그 뜻은 '길고 흰 구름의 땅'이다. 이름이 시사하듯이 이 나라에는 구름이 많고, 그래서 덤으로 비도 많이 온다. 물론 태풍(Cyclone)이 불면 비도 억수 같이 쏟아지지만, 태풍 때가 아니라도 년중 고루 비가 오는 편이다. 어느 정도이냐 하면, 거리에서 다니다 보면 우산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젖고 마르고 하기를 하루에 서너 번 하기는 마찬가지일 정도이다. 금방 비가 내렸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말짱한 하늘이 되어, 들고 있던 우산이 말라 가는 것이 보인다. 그러니 우산 없이 길을 다니면서 비가 내리면 그냥 맞고 다니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하여간 구름이 많아 뭉게구름이 끼인 하늘은 '고향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무척 아름답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마오리족이라 해도 순수한 마오리는 흔하지가 않다. 정부에서 연금을 지급할 목적으로 분류하는 바에 따르면 순수한 마오리의 16분의 1만 되면 '마오리'로 분류한다. 4대 할아버지 할머니 중 한 분이 순수한 마오리이면 마오리가 되는 셈이다. 금세기 초까지는 마오리족에 대한 백인들의 묵시적 냉대가 심했지만 현재에는 법률상 모두 평등하다. 어쨌든, 이렇게 따져도 마오리족의 비율은 전체 인구 3백50만의 1할인 35만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지내던 성 요한 대학의 몇 명 안 되는 기숙사 학생 중에 괴짜 학생이 둘 있었는데 (나까지 포함하면 셋이지만) 그 중 Russell이라는 학생이 정부 분류에 의하면 마오리였다. 다른 괴짜의 이름은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우던 영어 교과서에 나오던 Bill이라는 이름인 백인 학생이다. 이들 둘이 시내 나들이를 하는 날은 그야 말로 '사고 나는' 날이었다.이렇다 할 말썽은 피우지 않지만, '저만치 떨어져서 걸어 주었으면' 싶을 정도는 족히 된다. 그래도 그들과 나들이를 가는 것이 혼자 가느니보다는 훨씬 재미 있다.

어느 일요일 아침, 다들 나들이를 가고 혼자 기숙사에 남아 내 방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워낙에 클래식 중에서도 실내악이나 독주곡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날도 바하의 오르간 독주곡인 환상곡과 푸가 G단조(Fantasia and Fugue in G Minor)를 제법 볼륨을 높여 듣고 있었다. 한동안 음악을 듣다가 문득 방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둘러 보니 두 괴짜들이 제각기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뒤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I thought there was a High-Mass going on here." 특히 엄숙한 교회 예식에 오르간이 많이 사용되는 것에 견주어 나의 음악을 말한 것이었다. 그러길래 무슨 음악인지 그들이 궁금해 할 것 같아서 나도 한 마디 하였다. "Bach." 이로써 나는 또 하나의 교훈을 얻은 셈이었다. 뭔고 하니, 영어에 말장난(pun)이라는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날의 교훈이었다. 값진 교훈이었다. 그들의 반응이 더욱 볼만했다. Bach라는 말에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Rf, rf! 하고 '짖어 대는' 것이었다. 인간이 내는 이 개 짖는 소리는 그들의 음치 기질에도 불구하고 꽤 음악적으로 들렸다.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의 일반적인 차이점이 여기에서도 한 번 마각을 드러낸 것이다. 대체로 영국(특히 뉴질랜드) 발음에는 다소간 지역차는 있지만, 음절의 첫 r은 소리가 확실하게 나는데 음절 끝에 있는 r은 똑똑히 발음되지 않고 그저 그 바로 앞 모음이 길게 발음될 뿐이다. 한편 미국 발음에서는 징그럽다 할 정도로 끈질기게 발음을 다 한다.
      고백하지만, 그러고 보면 나도 무던히도 느린 사람인 셈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갑자기 왜 짖는지를 몰랐으니까. BachRf, rf!가 세 번이나 오고간 후에야 그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 느리다 아니할 수가 없다. 맹모삼천(孟母三遷)에다 비겨 국성삼문(國成三聞)이라 하면 건방진 이야기가 될까? Bach를 세 번 말하여 세 번 모두 '어디서 개가 짖나' 하듯 개 짖는 소리만 들었는데, 듣다 보니 영미음의 차이점이 먹구름 속에서 보름달 나타나듯 떠오르는 것이었다. Bach는 [ba:k], bark는 [ba:rk]로 소리나니까, 장난 치기 좋아하는 그들이 이때다 하며 Bach를 bark!라는 명령어로 해석하여 우스개 거리를 만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노릇이었다. 엉뚱하게 방 안에서 개가 짖어 잠시 어리둥절해 하기는 했지만, 그 일요일은 덕분에 유쾌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뜻밖이라 할 사건 아닌 사건이 또 하나 생겼다. 누가 그랬을까 하고 한동안 생각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마침내 범인을 찾아 내었다. 기숙사에는 화장실이 여섯 군데 있었는데, 그 중 둘은 WOMEN이라 표시되어 있고, 둘은 MEN, 나머지 둘은 아무 표시가 없는 화장실이었다. 표시가 없는 화장실은 unisex, 즉 남녀공용 화장실이었다. 웬 남녀공용인가 할지도 모르지만 여성해방과 남녀평등을 중요시하는 학교에서 그런 화장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었다. 문패가 WOMEN으로 된 곳에서는 아무런 특별한 문제가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사건은 나머지 화장실에서 벌어져 있었다. 소변기가 늘어선 곳에 이런 쪽지가 나붙어 있었던 것이다. "GENTLEMEN, PLEASE STAY CLOSER. IT COULD BE SHORTER THAN YOU THOUGHT." 대명사 IT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알면 이해가 될 것이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한 방울 한 방울이 몹시도 거북살스러웠던 모양이다. 하여간 사건의 주인공은 우리나라 어선 기지가 있는 Fiji라는 나라에서 온 Viliami라는 학생이었다. Fiji는 남태평양에 있는 조그만 섬나라. 그에게는 특징이 하나 더 있었다. 피부 빛깔이 검었는데, 상상이 가겠지만 흑인들은 머리칼도 몹시 꼬불꼬불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목수들이 귀에 볼펜을 꽂은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가 머리칼에다 볼펜을 꽂은 모습을 보면 좀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볼펜을 머리에 파묻어 놓고 배구나 당구(snooker)를 썩 잘 하는 품은 일류였다.
      말하자면 안내문에 해당하는 이 쪽지 사건은 뒷이야기가 약간 더 있다.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특히 이름 있던 Kathryn이 이 쪽지 얘기를 듣더니 자신만만하게 "We[Women] never dribble!" 하면서 흐뭇하게 웃는 것이었다.

Kathryn이라는 이름은 영어로 된 이름 중에는 흔하지 않은 축에 들어간다. 물론 우리말로 된 이름을 살펴도 이 이름은 희귀하겠지만. 흔히 쓰는 이름은 Catherine인데 (발음은 같다), 그렇게 이름지은 연유를 물었더니 Kathryn은 아주 간단히 대답했다. "I don't know. My father gave that name." 그래도 역시 이름에 대한 마음 씀씀이는 다들 꼭 같은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을 잘못 표기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이 Kathryn이라는 여인은 기숙사에 사는 대부분의 다른 여학생과 마찬가지로 여성해방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이다. 기숙사의 토론의 광장은 내가 TV를 스승 삼아 영어 듣기 훈련을 하던 휴게실이었는데, 어느 날 저녁 이런 저런 얘기 중에 그가 한국의 여성해방운동에 관해 (한국 여성이 영어로 쓴)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 우선 저으기 감동을 받았다. 내 생각으로는 그가 읽은 책의 관점이 여성의 지위에 대한 서양의 관점을 그대로 모방하여 적용한 것이라서 문제를 직시하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 했다. 현실적인 상황은 비슷할지 몰라도 그와 같은 상황의 배경은 서로 사뭇 다르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동양이나 서양이나 당사자인 여성들이 스스로 '우리는 힘이 없다' 하면서 스스로의 지위에 한계선을 긋는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휴게실에서 밤이 깊도록 토론하여 얻은 결론은 역시 문제를 바라보는 남성과 여성의 태도 모두가 대체로 바람직한 수준에까지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고독한 선각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구태여 흑백논리에 가까운 서양의 관점을 빌지 않고, 우리나라 고유의 사상을 바탕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우리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기숙사는 괴이한 인물의 백과사전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결혼을 않은 사람으로서는 나이가 꽤 된 독신자들만 살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명물이 또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이 명물은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 했다. Robert라는 영국 태생의 학생이 그 주인공이다. 영국에선 고등학교 교사로 있었다고 한다. 그가 걸작인 이유는, 두고 보면 알겠지만 우선 교사 시절 별명이 Hitler였다는 것을 참고로 해야 될 게다. 한 때에는 '선생님'이었으나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 학생이 된 그에게는 좀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어느 일요일 낮에 갑자기 복도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려 오길래 나가 보았더니, 샤워를 하고 나온 듯한 Robert가 가운의 옷깃을 꼬옥 여민 채 냅다 달아나고 있었고, 그 뒤를 Muru라는 마오리 교수의 부인 Lorraine이 추격하고 있었다. Lorraine 역시 짖궂은 데가 있었다. Robert가 가운 안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옷깃을 펄럭이며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데 Lorraine이 그만 그 사실을 알아버렸고, 그래서 Lorraine은 그 적나라한 자태를 전시하려고 그를 추격한 것이었다. 오랫만에 진짜 누드 쇼를보려고 우리는 기대했는데 시도는 무의로 끝났다. 그의 습관은 샤워 후 가운'만'을 걸친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꼭 변성기를 거치지 않고 살짝 몰래 자라 버린 듯했지만, 음정만 좋았더라면 그런 것쯤은 그다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앞서 말한 unisex 화장실 내에는 욕조가 있었는데, 대략 새벽 서너 시가 되면 그가 거기서 목욕을 한다. 매일은 아니고, 보통 사흘에 한 번 꼴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시험했다. 그런데 그가 '환영받지 못하는 명물'이 된 이유는 목욕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유는 언제나 그의 목욕에 따라 붙는 습관에 있다. 목욕이나 샤워를 할 때마다 예의 그 불안한 음정과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대는 때문이었다. 다른 입주자들이 한동안 관용과 인내로 대처하며 약간의 주의를 주었지만 Robert는 굳세었다. 꼭두새벽의 리사이틀은 여전하였고, 마침내 관용이라는 단어를 내팽개칠 시점이 다가왔다. 화장실 내에서도 욕조의 간막이가 다른 간막이와 마찬가지로 낮았다는 점이 여기서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Russell은 여기서도 장난꾸러기의 기질을 발휘하였고, 이내 그것은 샤워실이나 목욕탕에서 가곡의 밤을 감행하는 용사들에 대한 표준적인 처방이 되었다. 청소 용구함에는 한 말 들이 들통이 있었는데, 한밤중 한창 따끈한 물에서 기분 좋게 노래도 불러 가며 목욕을 즐기고 있는 Robert에게, 담배를 꼬나 문 채 방에서 뛰쳐 나온 Russell이 그 들통에다 찬물을 가득 담아 그대로 집어던져 버렸다. 물론 간막이 안에서는 갑자기 쏟아지는 찬물에 아우성이었지만, 벌거벗은 채 뛰쳐 나올 수가 없으니 하릴없는 아우성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야 주파수도 높은 항쟁만이 울려 나왔고, 잠시 후 간막이 안에 걸려 있다가 난데 없는 물벼락에 쫄딱 젖어 물방울이 뚝뚝 듣는 가운을 걸치고 나온 Robert를 보고 우리는 키득거렸다.

차례
  1. Once the hand is laid on the Pluff
    <TODAY>, 1988년 9월호
  2. No "Ploblem"!
    <TODAY>, 1988년 10월호
  3. Bach, BARK!
    <TODAY>, 1988년 11월호
  4. Even dogs can understand English
    <TODAY> 1988년 12월호
  5. Post-Christmas Letdown After Santa Died
    <TODAY> 1989년 1월호
  6. Neptune's Rebel
    <TODAY> 198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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