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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Once the hand is laid on the Pluff
    <TODAY>, 1988년 9월호
  2. No "Ploblem"!
    <TODAY>, 1988년 10월호
  3. Bach, BARK!
    <TODAY>, 1988년 11월호
  4. Even dogs can understand English
    <TODAY> 1988년 12월호
  5. Post-Christmas Letdown After Santa Died
    <TODAY> 1989년 1월호
  6. Neptune's Rebel
    <TODAY> 1989년 2월호
Post-Christmas Letdown After Santa Died
<TODAY> 1989년 1월호
뉴질랜드의 크리스마스에는 색다른 데가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겠지만, 적도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와 정반대 위치에 있는 이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도 우리나라와는 정반대 계절에 다가온다. 즉 여름이라는 얘기다. 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라 해도 계절 감각이 맞다면 그런 대로 어울리는 행사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들의 크리스마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정말로 어색한 것이 되기가 무척 쉽다. 물론 여러 교회에서는 어울리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었다. 어색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크리스마스를 미끼로 한밑천 잡자는 사람들의 광고였다. 아마 Rudolph인 듯 싶은 사슴 형상과 썰매와 솜으로 만든 눈과, 보기만 해도 땀에 속옷이 젖을 것 같이 더워 보이는 복장을 한 산타 할아버지가 Merry Christmas라는 광고가 나붙은 대형 쇼핑센터를 비롯한 여러 상점 간판과 쇼윈도우를 장식하고 있는 모습은, 절기의 차이가 자아내는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번화한 거리 네 길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헌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보고도 아무 감각이 없이 지나치는 행인들의 반응이었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지나는 한 사람을 붙들고 물어 보았더니, 그 사람의 대답은 지난 번에 Kathryn에게 자기 이름을 그렇게 지은 연유를 물었을 때와 비슷한 것이었다. 대답은 이러했다. "I don't understand it either. It used to be like that." 우리나라에서도 곧잘 볼 수 있는 실물 산타는 거기에서도 인기였다. 우리나라야 한겨울이니 실물 복장을 한 사람은 별로 더웁지가 않겠으나, 거기서는 한여름이니 보통 더운 것이 아닐 것이다. 털이 더부룩한 팔에 땀띠라도 나면 곤란할 텐데.
      교회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요란한 냄비 종소리도,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가상한 발언도 없었다. 당연한 소치인지도 모른다. 정부에서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웬만한 생활은 유지하게 해 주니까. 어느 정도이냐 하면, 어정쩡한 직장을 갖고 어렵게 생활을 꾸려 나가느니보다는 아예 실직자로 등록을 하고서 정부가 주는 실직수당을 받아 국민의 등에 업혀 사는 편이 더 안락하고 술이나 노름을 접할 기회가 더 많을 정도이다.

그 크리스마스엔 나도 사람들에게 선물할 것이 있었다. 워낙 남의 등에 업혀 사는 신세라 생활이 풍족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누굴 돕겠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당시에 (방학이라 아르바이트 삼아) 다니던 신문사에서 배운 최후의 농담을 선물했다. 선물할 대상은 유감스럽게도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내가 지내던 기숙사 학생들만 그 농담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누구나 자기표현의 장으로 애용하는 것이 자기 방 출입문 바깥쪽인데, 나도 내 방 문에 이렇게 써 붙여 놓았다. "Thou shalt have a nice day." 교회엘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도 기독교에 십계명이라는 것이 있는 줄은 알 것이다. 그 십계명의 말투가 바로 이러하다. 성경 중에 King James Version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쓰여진 시기의 영어가 이런 형태를 취하고 있다. "Thou shalt have a nice day." 그대로 번역하자면 -- "너희는 오늘을 즐겁게 보내야 한다." 그것을 읽은 다른 학생들이 최신판 제11계명을 제대로 준수했는가는 지금도 의문이 간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신문사에서도 한 직원이 모두에게 재미난 것을 선물했다. 신문 기사를 쓴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신문 이름은 The Auckland Sun, 기사 이름은 "SANTA DEAD -- no more gifts." 원고를 교열부로 보내면 그 곳에서는 신문에 실릴 때의 배열로 인쇄한 견본을 만들어 다시 편집부로 보내는데, 이 견본을 proof라 한다. 한참 일하고 있는데 이 제목의 proof가 여기저기로 나다니고 있었다. 산타가 죽다니, 재미있는 기사로구나 생각되어 읽어 보았더니, 한 테러 집단이 산타의 비행 썰매에 폭탄을 장치하여 네 마리 사슴 중 두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중태에다가 나머지 한 마리는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산타의 비행 썰매는 북극 부근에서 공중폭파되었고, 산타의 잔해는 그 근처 15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폭발물을 장치한 집단은 "Santa Must be Dead for the Benefit of the Children"이라는 길다란 이름의 테러 집단으로 추정된다고.
      헌데 그 기사는 proof의 허물을 벗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그 기사가 없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코 앞에 다가왔으나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못한 한 기자가 아이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푸느라고 나름대로 그런 허구를 만들어 돌린 것이었다 -- 나중에 안 것이다. 허구인 줄이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우스개 삼아 한쪽 귀퉁이에 실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기발한 그의 기지에 찬사를 보낸 동시에 그렇게라도 산타를 죽이고 싶어하는 그의 심경이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각박한 세태에 섭섭해 하기도 했다.
      이 proof만의 기사는 지내던 학교 학생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되었다. 그것을 복사하여 학교 기숙사 게시판에 붙여 두었던 것이다. 1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냥 붙어 있으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를 즐기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게시판에 붙은 것을 떼어내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크리스마스와 관련하여 배운 또하나의 말이 tell이다. 지내던 학교에서 과정이 끝나자 졸업한 학생들은 보따리를 쌌다. 그 중 한 학생 부부가 이별의 인사를 하길래 왜 그렇게 서두르는가 물었더니 그 대답이 이러했다.
      "We were told to be there before Christmas." 어감을 살려 그대로 옮기면 크리스마스 전에 거기로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뜻이 된다. 무심코 한 말이거니 하여 반문했다. "Told?" 그랬더니 그들은 얼른 표현을 바꾸었다. "We were asked to be there before Christmas." 그 말에서 받은 느낌으로 그들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었다. 지내던 학교는 감리교와 성공회가 함께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감리교측 졸업식은 Dismissal이라고 불렀다. 해고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 졸업식의 특이한 점은, 마지막에 학장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악명 높은 한 마디를 졸업생들에게 하는 것이다. You are dismissed. "해고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해산되었습니다. 즉, "해산합니다." 이 말을 들은 직후에 그 학생 부부가 짐을 싸고 있었으니 그다지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라 거리에는 사람도 많았다. 장사하는 사람이야 대목이니 오래 전부터 준비했다. 이런 광고도 볼 수 있었다. "Only 120 days to go to Christmas." 무려 넉 달 전에 나붙은 광고다. 그럭저럭 널 달이 지나 가게 주인들이 반가와 마지 않는 크리스마스 무렵에 선원선교센터에 갔던 어느 날, 허리띠의 버클이 거의 땅을 향한 수도사 한 사람이 문구류를 사러 거리엘 나갔다 오더니 그의 특이한 익살로 한 마디 하였다. "There's some murder going on in the street." 살인이라니? 정색을 하고 바라본 그의 얼굴은 살인 장면을 목도하고 온 듯한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채워져 있었다.
      Murder? 하고 물어 보았다. 그제서야 그는 내가 맞장구를 치지 않는 이유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더라, 걸음을 걸을라치면 사방에서 오는 사람들에 부딪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더라 하는 등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렇지만 그것이 살인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다시 물을 필요도 없이 그 말 뜻을 알 수 있었다. 우리말로 그대로 하자면 "끔찍하다, 끔찍해" 정도가 가장 무난할 것 같다. 기억해 두면 기발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래도 이 점은 정말 대조적인 것이다. Auckland는 대도시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대도시라고 말하는 것과는 그 뜻이 좀 다르다. 면적으로 보자면 아마 서울과 비슷하겠지만, 인구는 고작 80만 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의 자동차 숫자가 70만을 넘어선 지 한 달 남짓 되었으니 Auckland는 서울의 자동차 핸들 숫자와 인구가 비슷하다고 해야 되겠다. 아니면 서울에 Auckland 인구에 맞먹는 자동차 핸들이 있다고 해야 옳을까?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촌향도 현상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거기서는 도시에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하여 재작년에는 Auckland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비록 몇십 명에 지나지 않지만 인구 감소 현상을 기록했다. 그 중에는 도시 근교로 가서 차로 출퇴근을 하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시골로 가서 농장을 하겠다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서울도 자동차가 너무 많으니 몇십 대라도 자진해서 시골로 농사지으러 가면 어떨까. 하여간 그 수도사에겐 이렇게 한 마디 해 주었다. "In Seoul the only place where you can be alone will be inside toilet." 물론 거기서도 혼자 있을 수 있을 뿐이지 조용한 것은 아니다.
      새해를 맞는 풍경은 그야 말로 조용했다. 술집이야 변함 없이 붐빈 것이 분명했지만, 제야의 종소리도 망년회 무리도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는데, 크리스마스를 지낸 직후에 오는 post-Christmas letdown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뒤에 있는 음력 설이 더 이채로왔다고 할 수 있다. The Auckland Sun에서는 중국의 설 풍습 등을 소개하는 특집도 실었다.

연말 무렵 Asian Student Scholarship의 내 후임자로 Solomon Islands의 신부님이 왔다. 그의 이름은 Philip. 밤 10시가 지난 뒤의 방문을 결례로 여기는 서양 사람들 틈에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기숙사 사람이 둘 있다는 것은 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Philip이었고, 그래서 한밤중에 둘이 한 방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많았다. 머리칼에 볼펜을 꽂는 Fiji 출신 Viliami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턱수염에 볼펜을 꽂고 다녔다. 흑인들이 수염을 기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을 상상해 주기 바란다.
      다른 남태평양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상당히 호리호리한 체격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은 호리호리한 제격 때문에 자기 나라에서는 그다지 대접 받지 못 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마오리 사람들을 위시하여 남태평양 여러 섬나라 원주민들은 대체로 몸집이 거대하였다.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Philip은 그들이 살이 쪄야만 존경을 받는 풍토가 있기 때문에 다들 살이 찌려고 애쓴다고 했다. 그의 경우는 좀 애처로운 편이었다. 많이 먹고는 있었지만 그다지 성과는 있는 것 같지가 않았으니까 말이다. 기실 그는 살이 찌느냐 하는 문제에는 초연해 있었고, 정작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고향 사람들이었다.
      뉴질랜드에도 거대한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자신의 몸무게를 가다듬을 수가 없어서 다른 의지를 사용해야만 나들이를 할 수 있는 사람들도 꽤 보았다. 주범은 아무래도 고칼로리 음식물일 것 같다. 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 중 하나가 초콜렛인데, 성 발렌타인 데이가 되면 제과상들은 유럽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자랑 비슷한 광고를 한다. 발목이 웬만한 사람 허벅지 만한 사람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렇게 생명을 위협을 받을 만큼 비만한 것이 문제가 된다면 절제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겠지만, 맛있는 초콜렛을 마다할 정도로 모질게 작심한 것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언제부터인가 Diet 음식물이 나왔고, Diet 콜라까지 일반화되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살인적인 비만까지도 수입하고 있는 모양이다.
      비만의 원인을 대책 없는 식성으로 보고, 이 같은 왕성한 식성을 비판적인 눈으로 그린 만화 중에 Jim Davis라는 작가의 것이 있다. 작가의 이름은 몰라도 제목은 귀에 익은 사람이 많을 줄로 안다. 바로 Garfield이다. John이라는 소년이 언제나 고양이 Garfield에게 당하는 내용의 만화인데, 이 고양이의 식성이 인간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재미있다.

차례
  1. Once the hand is laid on the Pluff
    <TODAY>, 1988년 9월호
  2. No "Ploblem"!
    <TODAY>, 1988년 10월호
  3. Bach, BARK!
    <TODAY>, 1988년 11월호
  4. Even dogs can understand English
    <TODAY> 1988년 12월호
  5. Post-Christmas Letdown After Santa Died
    <TODAY> 1989년 1월호
  6. Neptune's Rebel
    <TODAY> 198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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