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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 책
[ 3/17권 ]
신약읽기
신약읽기 ― 역사와 문헌
데일 마틴문학동네2019년 1월
ISBN 978-89-546-5490-6
Dale B. Martin, New Testament History and Literature
Yale University Press (2012)
ISBN 978-0-300-18085-5
평생 ‘신약 개론’을 가르쳐온 예일 대학의 석학 데일 마틴 교수의 명강의를 책으로 만난다. 저자는 신약을 거룩하거나 성스러운 글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 책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 책은 신약의 문서 하나하나를 역사비평의 시각으로 파헤치면서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기원과 실체에 접근한다. 아울러 정전과 교리가 확립되기 이전 그리스도교의 다양성과 당시 지중해 주변 세계의 사회상이 흥미롭게 제시된다.


신약에 대한 오해와 진실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그리스도교를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총인구의 28%로 1,360만 명에 달한다.(2015년 통계청 자료)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근간이자 서구문명의 주요한 원천인 신약성서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는 서론에서 사람들이 신약에 대해 얼마나 잘못 알고 있는지 일깨우고자 퀴즈 문답을 제시한다.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다음 내용들은 신약에 나올까?

1) ‘삼위일체’ 교리.
2) 베드로가 로마에 교회를 세웠다.
3) 사탄과 그를 따르는 마귀들은 하느님에게 반역한 타락한 천사들이었다.
4) 예수는 하느님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이혼을 금한다고 가르쳤다.

1)의 답은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아니요’이다. 신약에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말이 나오고 이들이 한 묶음이라는 언급은 있지만, 삼위일체의 실제 교리, 즉 ‘셋은 서로 다른 인격이며 각기 완전한 신성이라는 하나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교리는 여러 세기에 걸쳐 치열한 논쟁 끝에 확립된 신조이다.
2)도 신약에 나오지 않는다. 베드로가 로마 교회의 설립자라는 이야기는 그리스도교의 전설이자 로마 천주교회의 중요한 전승에 속한다. 또한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는 이야기도 신약 자체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3) 또한 서기 2세기에 그리스도교인들이 만들어낸 관념일 뿐 신약에는 나오지 않는다.
4)는 신약에 분명히 나온다. 마르코복음(마가복음) 10장 2~12절에서 예수는 어떤 이유로도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흔히 성서에 나온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실상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죽어서 몸은 지상에 있어도 영혼은 예수님이 계신 하늘나라로 간다는 영원불멸의 관념도 성서에서 실제로 가르치는 내용은 아니라고 저자는 밝힌다. 신약은 영혼의 영원불멸보다는 ‘부활’을 가르치기 때문이며, 영혼의 영원불멸은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관념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역사비평으로 바라본 신약

이 책은 신약 이후에 새로 만들어지고 덧붙여진 신학적 관념을 배제하고, 현대의 ‘역사비평’ 방식에 따라 고대(1~2세기)의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신약 본문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본문을 해석하는 역사비평적 방법에서는 고대의 저자가 의도한 의미, 본문의 원래 대상이 되는 청중의 해석, 그 본문이 쓰인 원래 언어를 찾아내는 한편 시대착오를 피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지난 2000년이라는 시간의 대부분 동안 성서를 해석할 때 사용한 방법은 이것이 아니었다. 오리게네스라든가 아우구스티누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 등을 비롯한 현대 이전의 해석자들은 역사보다는 신학적 질문을 최우선으로 삼으면서 본문을 마음대로 우화로 풀어 해석했다. 종교개혁을 비롯한 현대사의 여러 사건을 거친 뒤에야 역사비평적 방법이 서구사회에서 주로 사용하는 해석 방법이 되었다.(576쪽)


성서의 글은 그 자체로는 경전이 아니다. 그것을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만 경전이다. 어떤 글이든 글 자체가 거룩한 것은 아니다. 신약에 포함된 여러 문서는 고대 지중해 지역의 여느 문서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문헌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에서는 신약에 포함된, 즉 정전正典에 속하는 그리스도교 문서뿐 아니라 정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때로는 외경外經으로 분류되는 『토마의 복음서』(도마복음)『바울로와 데클라 행전』 같은 당대 문헌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어떤 글이 정전에 포함되거나 배제된 이유에는 문서와 연관된 사도(실제 사도나 그 제자가 쓴 문서가 아니라 해도)의 권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진 정도, 점점 발달해가는 그리스도교 교리와 신학에 부합하는지 여부 등이 있었다. 당연히 당시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 형성된 여론이 중요하게 작용했고, 아울러 코덱스codex의 발명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코덱스 이전에 성서의 각 책은 두루마리 형태로 존재했다. 마태오복음 하나만 담으려 해도 꽤나 두꺼운 두루마리가 필요했고, 심지어 두 개 이상의 두루마리가 필요한 문서도 있었다. 그러다 코덱스가 별명되면서 두루마리를 하나하나의 낱장으로 잘라 함께 꿰매 묶게 되었고, 4세기에는 구약까지 포함해 성서 전체를 한 권짜리 두꺼운 책으로 제작했다. 이렇게 여러 문서를 한 권으로 묶게 되면서 넣거나 뺄 문서를 확실히 정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역사비평에서는 본문을 해석할 때 해당 본문이 정전 전체에서 가지는 의미에 견주어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예컨대 요한복음에서 찾을 수 있는 교리나 주제를 가지고 바울로를 해석하거나 요한복음을 바울로를 통해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교회가 해온 성서 해석과는 달리 역사비평에서는 신약의 문서들을 하나하나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중요한 주제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다양성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에는 예수를 신, 인간, 또는 둘 모두가 결합된 인물이라는 식의 여러 관점이 공존했다. 이 ‘예수운동’은 처음에 유다인들에게서 생겨났지만 머지않아 이방인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신약 문서가 쓰인 시기와 신약의 저자들

신약에 관한 또하나의 흔한 오해는 신약의 맨 앞에 나오는 4대 복음서가 시기적으로도 가장 먼저 쓰였으리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들 복음서는 모두 바울로의 편지들보다 20~40년 뒤에 쓰였다. 신약에서 가장 오래된 문서는 바울로의 편지 중 데살로니카1서(데살로니가전서)로 알려져 있다. 이 편지는 서기 50년 무렵에 작성되었다. 당시 가장 권위 있는 지도자였던 바울로의 편지를 받은 교회는 원본을 보관하고 대신 필경사를 시켜 사본을 만들어 여러 교회에서 돌려보게 했다. 그러다 바울로의 권위에 기대고자 바울로의 이름을 빌려 쓴 ‘차명편지’들이 등장했다. 이런 차명작품은 고대 문화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바울로의 편지 가운데 명백히 차명으로 밝혀진 것은 디모테오1?2서(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이며, 진위 여부가 논란중인 것은 에페소서(에베소서), 골로사이서(골로새서), 데살로니카2서(데살로니가후서)이다. 명백한 위서 세 편은 교회의 ‘목회자’로 일하는 방법, 목회자를 임명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어 ‘목회서신’이라 불리며, 논란중인 세 편은 흔히 ‘제2바울로 서신’이라 불린다. 데일 마틴은 목회서신과 제2바울로 서신 모두 위서로 판단하고 있다.

예수의 말을 모아 그의 활동과 죽음을 전하는 4대 복음서는 애초에 익명으로 출간되었다. 차명도 아니고 어떠한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쓰였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르코복음은 베드로의 제자가 썼고, 마태오복음은 예수의 실제 제자인 마태오가 썼으며, 루가복음은 바울로의 제자가, 요한복음은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이 썼다고 믿지만, 현대의 학자들은 대부분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현재와 같은 이름은 네 권의 책을 예수의 제자들이나 그들과 가까운 제자들과 연결하기 위해, 즉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나중에 붙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것은 서기 70년 무렵으로 거슬러올라가는 마르코의 복음서다. 이렇게 연대를 추정하는 가장 주요한 근거는 서기 66~70년에 일어난 유다 전쟁과의 관련성이다. ‘작은 묵시록’이라 불리는 마르코복음 13장에서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한다.(예루살렘 성전은 실제로 로마군대에 의해 70년에 파괴된다.) 여기서 기술되는 사건들은 그 자체로는 ‘종말’이 아니라 그 전조이자 경고로 나타난다.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 즉 로마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성전이 파괴되고, 수천 명의 유다인이 포로로 잡혀가는 사건은 마르코복음에서 말해지지 않는다. 반면에 마르코복음을 원천자료로 삼아 작성된 루가복음은 이런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루가복음 21장)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마르코복음의 저자는 유다 전쟁 동안 로마와 유다 지방 사이의 갈릴래아에서 살았던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전쟁의 초기를 겪었거나 알고 있었을 인물로 추정된다.

마태오복음, 마르코복음, 루가복음은 ‘공관복음서’라 불린다. ‘공관’이란 같은 관점을 뜻한다. 이 세 복음서는 비슷하거나 똑같은 사건, 말씀, 비유,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법과 기본 윤곽까지 비슷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가 받아들이는 가설은 마르코복음이 먼저 나오고 마태오복음과 루가복음은 이를 활용하여 작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르코복음에 없는 내용이 마태오와 루가에는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또다른 원천자료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즉 마태오복음과 루가복음의 저자는 마르코복음과 가상의 원천자료를 참고하면서 각자 자신들의 복음서를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183쪽 도표 참조)

요한의 복음서는 문체와 내용 모두 세 편의 ‘공관복음서’와 확연히 다르다. 서두부터 철학적이고 신학적이다. 요한복음서는 높은 차원의 그리스도론(예수의 본성에 관한 교의)을 피력하고 있으며, 이는 복음서 저자가 속한 종파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자 그리스도교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한 시점에 쓰였음을 나타낸다. 대체로 요한복음서는 1세기 말이나 2세기 초에 쓰인 것으로 본다.

이처럼 신약의 복음서는 전승된 이야기나 원천자료를 바탕으로 저자들이 각자의 관심사나 성향, 더 나아가 각자의 ‘신학’에 따라 편집하고 구성한 이야기다.

역사적 예수

‘역사적 예수’를 논하는 13장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신약의 서사들은 때로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일관된 전체 그림으로 맞추기 어렵다. 그렇다면 ‘역사적 예수’가 누구였는지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까? 저자는 현대의 역사 연구 방법에 따라 1) 복수의 증언이 있고, 2) 본문의 신학적 성향과는 상이한 자료는 역사적으로 정확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역사적 예수는 ‘신학적 예수’와는 다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나자렛 예수가 신학적으로 지니는 의미에 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신학적 예수, 즉 그리스도교 믿음과 교리의 원천인 완전한 그리스도는 신학자와 그리스도교인의 관심사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반면에 역사적 예수는 오늘날 역사학에서 적용하는 규칙에 따라 구성된 대상물이다. 사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를 인정하기 어렵다. 역사적 예수는 결코 신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4대 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 ‘예수의 재판’에 대해 저자는 성서에서 묘사하는 그런 재판은 실제로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십자가형은 로마인의 흔한 처형 방법이었는데, 로마인이 유다인 하층민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재판이나 심문 따위는 필요치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혹 재판이 있었다 하더라도 당시 로마의 통치 방식이나 예수 제자들의 사회적 지위로 볼 때 재판 과정을 지켜볼 수도 없었다. 예수의 재판에 대한 서사는 나중에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이다.

또한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건 사실일까?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면, 이는 예수가 요한의 제자였고 그보다 지위가 낮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럼에도 복음서들은 이를 의식하여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으되 지위가 더 낮지는 않았음을 증명하려 애쓴다. 이는 역으로 이 일이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저자가 신약 문서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여 구성해낸 ‘역사적 예수’는 ‘묵시적 유다인 예언자’로 귀결된다.  

나는 역사적 예수를 주로 이스라엘의 기나긴 예언자들 전통에 포함되는 유다인 예언자의 한 사람이며, 그러나 적어도 서기전 2세기에 다니엘서가 쓰인 때부터 유다교 일각에서 생겨나 퍼져 있던 여러 형태의 유다교식 묵시사상과 묵시적 기대의 영향을 받은 예언자로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본다. 예수는 여행을 다니며 치료하고 마귀를 쫓아내며, 하늘에서 보낸 구세주 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형태의 대리자가 나타나 현재의 정치질서를 뒤엎고 하느님이 직접 지배하는 하느님의 나라가 곧 닥칠 것이라고 가르친 스승이었다. (351-2쪽)


예수는 유다교 성전에서 단순히 그곳을 정화하기보다는 상징적으로 파괴하면서 전통적 예언자들이 하는 일종의 ‘길거리 정치’를 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예수는 또다른 묵시적 유다인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의 제자로 활동을 시작하고, 묵시적 구세주라는 인물로서 처형되며, 나중에 그의 추종자들은 묵시적 기대가 주입된 공동체를 이루어 ‘예수운동’을 전개한다.

역사적 예수는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었다. 역사적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를 기대했지 로마 천주교회나 그 밖의 다른 어떤 교회가 세워질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358-9쪽)


바울로, 결혼, 젠더 위계

예수는 이혼과 재혼은 어떤 상황에서도 금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고대 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이혼할 수 있었다. 이혼은 성적 방종이란 함의를 지녔고, 따라서 이혼 금지는 금욕주의적 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예수는 전통적 집안에 반대하고, 대신 전통적 집안에서 벗어난 이들이 하느님의 집안에서 새로운 가족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수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사람들을 불러낸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바울로 또한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으로서 금욕주의자였다. 바울로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최초의 그리스도교인 선교사이자 교회 최초의 신학자이며 교리와 신조를 창시해낸 인물이다.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창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니체는 예수의 순수한 종교를 망쳐놓은 장본인으로 바울로를 꼽았다. 십자가를 그리스도교의 중심에 세워 십자가에 의한 구원을 만들어냄으로써 그리스도교를 ‘노예 종교’화했다는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도 바울로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예수가 미신이라는 용을 쓰러뜨리자마자 바울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그것을 다시 일으켜세웠다.”(368쪽)

바울로의 위상은 그의 이름으로 쓰인 편지들이 신약성서의 절반을 차지하는 데서도 확인된다. 이런 바울로는 과연 성차별주의자일까, 아니면 성평등주의자일까? 바울로를 성차별주의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드는 대표적인 사례는 고리토1서(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다. “여자들은 교회 집회에서 말할 권리가 없으니 말을 하지 마십시오. 율법에도 있듯이 여자들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14장 34절)

고린토1서는 논란의 여지 없이 바울로가 직접 쓴 편지에 해당한다. 하지만 여기 14장 34~35절은 바울로가 쓰지 않았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후대의 어느 필경사가 바울로의 이름을 빌린 차명편지의 영향을 받아 이 부분을 가필해 끼워넣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어휘가 목회서신에 더 가깝고, 이 대목이 앞뒤 문맥의 흐름을 오히려 끊어놓고 있는 점 등이다.(514쪽 참조)

물론 바울로가 하느님의 계획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고 믿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바울로는 남성 우위의 젠더 위계를 전제로 말하고 있다. 여자만 천으로 머리를 가리라고 말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바울로는 여러 곳에서 드러나듯 여성을 협력자로 여겼고, 자신이 세운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기도 했으며, 전도자와 예언자로 활동할 수 있게 했다. 남성과 여성을 완전히 동등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해도 자신의 교회에서 여성에게 핵심적 역할뿐 아니라 지도자 역할까지 맡겼다는 것은 분명하다.

바울로의 결혼관은 독특하다. 예수도 바울로도 독신으로 살다 죽었다. 바울로가 직접 쓴 것이 확실한 편지들에 따르면, 결혼은 성욕을 근절하는 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성과 정욕을 경계하는 바울로는 정욕을 견뎌낼 수 없거든, 자제할 수 없거든 그때 비로소 결혼을 하라고 당부한다. 바울로는 결혼을 자식을 낳는다는 목적을 위한 ‘선’으로 보지 않았으며, 그리스도교인이라면 자기처럼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보았다.

신약 외경에 속하는 『바울로와 데클라 행전』에 나타나는 바울로 사상은 심지어 성관계에 이어 태어나고 죽고 썩는 순환 고리를 끊을 금욕적, 반결혼적, 반가족적 메시지를 전한다. 이 문서는 전통적 집안뿐 아니라 국가까지 배척하도록 요구한다.

반면에, 바울로의 이름을 빌린 위서인 목회서신에서 교회는 하나의 집안이 된다. 이 교회 안에서는 가부장적 집안의 전통에 따라 남성이 중책을 맡고 여성은 침묵과 복종과 출산의 역할을 맡는다. 이처럼 신약은 전통적 집안과 여성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이는 초기에 다양한 종류의 그리스도교가 공존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 책에서 데일 마틴 교수는 최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에서 쓰인 문헌들을 분석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들여다본다.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를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며 그 안에서 유다교가 차지한 위치를 설명한다. 이어 신약에 포함된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이런 책들이 고대 문헌으로서, 또 역사적 연구의 원천자료로서 지니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초기 그리스도교의 다양한 모습을 흥미롭게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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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옮긴이의 말 - 신약성서와 그리스도교, 교회 2020.1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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